출25:10-22,히9:1-5, 언약궤(법궤). 1/ 10.24 수요예배
성막의 기구 중, 마지막으로, 가장 거룩한 기구이며, 중요한 의미가 있는,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 대하여 공부함. 본래 구약시대에는, 제사장도, 휘장으로 가로막혀 있는, 이 지성소에 들어올 수 없었으며, 오직 제사장 중에서, 그해의 대 제사장으로 선출된, 대 제사장만이, 1년에 한번, 대 속죄일에, 속죄의 피를 가지고, 들어올 수 있던 곳이었음.
바로 대 제사장이, 대 속죄일에, 성소의 휘장을 열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면, 이 법궤 앞에 서게 되는데, 이 법궤 앞에서, 하나님을 찾아오게 된 목적을 말함. 죄 문제->용서의 선언->문제응답을 체험!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지성소를 가리고 있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덧입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큰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1. 법궤의 명칭
(1) 법궤 : 법궤는 하나님의 법의 말씀인 십계명이 들어 있으므로 법궤라 불리웠습니다. (출 25:16)
(2) 언약궤 :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들이 있으므로 언약궤라 불렀습니다.
(수 3:6-8 4:9 히 9:4)
(3) 증거궤 :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와 그리고 구원의 증거 말씀이 담겨져 있으므로 증거궤라 불렀습니다. (출 26:33-34, 25:22) 그 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 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밖에 두라(출 30:6)
(4) 금궤 : 법궤를 금으로 쌓았기에 금궤라 불렀습니다. (출 25: 11)
(5) 권능의 궤 : 하나님의 권세가 나타나는 법궤이므로 권능의 궤라 불렀습니다.(시 132:8)
(6) 거룩한 궤 (대하 35:3)
(7) 하나님의 궤(삼상 3:3)
(8) 여호와의 궤 (삼상 6:1)
(9) 이스라엘 신의 궤(삼상 5:7)
(10) 그 밖에도 성궤, 나무궤 등의 명칭들이 있었습니다. 법궤는 곧 하나님을 상징하는 뜻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2. 법궤의 구조
법궤는 크게 삼중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1) 궤 - 물건을 담는 부분. 여기에 세 가지 성물이 담겨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언약궤" 에 대한 말씀을 읽을 때, 이 언약궤는, 범죄 하는 백성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하지 아니하시고, 보호하여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해 주시는 것임을 믿게 된다.
노아의 방주는 안팎으로, 역청이 칠해져 있었으며,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물에 띄워 보냈던, 갈대 상자도 역시, 역청을 칠했던 갈대상자였다. 여기서 역청은, 지금의 도로를 만들 때 쓰이는, 아스팔트와 같은 것인데, 원문은 "카파르"로서, "속죄"라는 뜻으로 쓰여 지는 구약적인 용어이다. 그런데 과연, 이 속죄는 무엇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나? = 피를 통해서 속죄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봤을 때, 노아 당시의 방주나, 요게벳이 모세를 위하여 만든 궤에, 역청을 발랐다는 것은, 영적으로 무엇을 발랐다는 뜻인가? 바로 피를 발랐다는 말씀. = 이 피 때문에 구원받음!! 나아가서 이 피는, 곧 신약시대에서의,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피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법궤는 볼품없는 조각 목으로 만든 상자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거하실 수 있을,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마찬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는, 외형적으로 볼 때는,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하게 해결하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다시 말하여, 노아의 방주나, 모세의 갈대 상자와 같이, 법궤는, 별 모양이 없는 상자에 불과하지만, 구원의 주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 = 법궤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시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냄이다. 법궤는 하나의 상자로 되어 있다. 그 상자 안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들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십계명의 돌 판을 넣어 두었다는 것이다.
성경은 그 돌 판을 넣어 둔 상자의 뚜껑을, 속죄소라고 칭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상자의 뚜껑이, 속죄소가 되며, 그 상자를, 법궤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십계명을 새긴 돌판 두 개를, 법궤 안에 넣어 두라고 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죄 중에 있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그 죄에서 구원받기를 원하셨다. 죄에 빠진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무자격자), 무엇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이 베풀어주셔야만 함임.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방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무엇인가 열심히 행해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방법 외에 다른 길이 없는데도, 사단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인간적인 선행'에, 우리의 마음을 빠지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와는 거리가 먼, 자기 의를 만들어가는 삶을 살도록 속여 왔다. 이사야선지는, 인간의 의를 뭐라 하시나?
(사64:6)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사실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얼마나 선한 일을 행할 수가 있겠으며, 우리가 애쓴다고 해서, 얼마나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에게, 무한한 능력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노력한 만큼 거룩해지고 선해질 수 있음으로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데, 그것은 실상은, 우리의 느낌이 아니라, 사단의 속임수이다. 우리의 행위로는, 절대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우리 행위의 한계와, 우리의 노력의 결과가 과연, 어떠한가를 깨닫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십계명을 포함한, 율법을 주셨던 것이다. 우리가 볼 때, 율법은, 노력하면 지킬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우리가 이미 죄로 오염되어 있기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의,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임. 십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완전하게 지킬 수 없음임.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법궤에 십계명의 돌판을 넣게 하심으로서, 인간으로의 구원이 불가능함과 함께,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서만, 구원이 가능함을 가르치고 계심.
2) 속죄소 - 궤의 뚜껑 부분이다. 속죄소의 크기는 장이 2.5규빗(1미터 112.5센티)이며, 광이 1.5규빗(67.5센티)이다. 바로 이 속죄소 위에, 대제사장이 속죄를 위한, 피를 뿌렸다.
출애굽기 25장 17절부터는, 법궤를 덮는, 속죄소에 대해 설명하는 말씀이 나옴. (출 25:17~22)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25장 10절에서 22절까지, 법궤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속죄 소'라는 단어를, 여덟 번이나 반복 말씀하심을 봄.
이를 볼 때, 하나님의 마음은, 속죄 소에 그 핵심이 계심을, 잘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율법을 내려주시기 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는, 많은 죄가 거하고 있었다. 모세가 이른 아침부터, 밤이 늦도록 재판을 해도, 끝이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 대한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율법을 내려주셨다.
그 율법이 내려오기 전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죄가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율법이 내려오자마자, 죄에 대한 심판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죽임을 당해야 했다. => 안식일에 나무를 하다가, 죽임을 당한 일이라든지, 율법이 내려온 날, 금송아지를 만든 것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는 등, 계속해서, 죽는 역사가 일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숫자보다, 가나안에 들어간 숫자가, 훨씬 적은 것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가, 원래는, 하나님의 축복하심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었는데, 율법을 받은 이후로는, 도리어 줄어든 것을 보면, 율법의 저주로 인해, 이들에게 죽음의 역사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백성들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번제단 이나 물두멍, 향단, 등대, 떡상 이런 기구들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성막에 있는, 다른 모든 기구보다도, 이 법궤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던 것이다.
법궤를 중요하게 여기신 이유는 무엇? = 법궤에 속죄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 귀한 하나님의 성전 안에, 속죄소가 없었다면, 죄를 짓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었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죄로 인해 저주를 받고,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속죄소인 것이다. 속죄 소는 법궤를 덮는 뚜껑을 말한다.
그 뚜껑 양쪽 편에는, 그룹들을, 속죄 소와 한 덩이로 붙여, 망치로 쳐서 만드는데, 그 날개를 펴서 속죄소를 덮고, 그 얼굴은, 속죄소를 향하게 만들라고 하셨다. 그 속죄 소에 피가 뿌려져서, 우리의 죄가 사해지기 때문에, 거기서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실 수, 있게 되는 것이다.(출 25장 21-22)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속죄 소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겠다고 말씀하셨다. 죄 속에 빠진 인간들이, 죄를 갖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 오직 죽음뿐임.
죄가 있는 사람은 먼저, 속죄 소 앞에 나아와서, 죄를 씻어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임. 속죄 소위에 뿌려지는 어린 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보혈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죄를 사함 받은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속죄 소위에서 만나겠다고 말씀하심임.
3) 그룹 - 속죄 소 좌우에 연하여 있는 천사 상으로서,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고 있으며, 속죄소를 향한 상태로서, 얼굴을 서로 마주 대하고 있다.(출25:18-20)
속죄 소위에 위치한, 두 그룹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하나는 오른손을 대신하여 일을 하는 천사로, 다른 하나는 왼손을 대신하여, 구원역사를 위해, 일하는 천사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두 그룹들이 속죄 소위에서, 속죄 소를 향하여, 얼굴을 서로 대하게 하는 것은, 화해의 진리이다. 그룹의 날개로 속죄 소를 덮음에서, “덮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파르”라고 한다. = 예수님은 보혈로, 죄인을 대속하고 죄를 덮어 주셨음을 의미한다.
3. 언약궤의 용도와 영적인 교훈
①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교훈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민 10:33).
이처럼 이스라엘백성들이 행군을 할 때는, 언약궤가 항상 백성들에 앞서서, 그 행군을 인도했던 것임. 이는 바로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서, 우리들의 갈 길을, 앞서서 인도하고 계시는, 선한 분이심을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임. 무슨 말씀?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인도를 믿는 사람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장래의 나아갈 길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임. 언약궤가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서, 나아갈 길을 친히 인도하고 계셨듯이,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세밀하게, 선하게, 앞서서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계시는 것임. 무어라 말씀하시나?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렘10:23)
여러분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이처럼 여러분의 앞길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나? / 그분을 향해 시선을 집중시키고, 또한 여러분이 이 주님 안에 거하심을 확인하면서,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여러분 앞의 당면한 문제들은 이미 해결됐음을, 우리는 자기 백성의 앞길을, 언약궤로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확신할 수 있는 것임. 이 주님은 지금도 성령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보다 앞서가시며, 생활 중에서 역사해 주시는 분이심을 확인!
② 하나님의 승리하심의 교훈임.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투 때임. = “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삼상 4:3).(=언약궤가 함께 하면 항상 승리할 것임을 확신!!)
이처럼 언약궤의 영적인 교훈은 항상 승리의 상징하고 있는 것이었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를 앞세우고 가나안을 점령했으며, 또한 항상 전쟁에서도 승리했던 것임.(=각종 전쟁은 물론,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여리고 점령도.. = 다윗은 무슨 일을 행하려 할 때도 물었음.) 우리 성도들이 생활 중에서, 왜? 실패와 낙심과 두려움 또는, 좌절 가운데에서 힘들어하게 되는가? 이는 바로 자신에게,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의 부재에 이유가 있는 것임.
다시 말하면,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의 삶을, 입으로는 혹시 하나님을 부르고 있을지라도, 실제의 마음의 중심과 행동이, 함께 동행하시며, 항상 앞길을 인도하고 계시는, 주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삶을 살고 있거나, 또는 주님을 잊고, 내 방법 내 뜻대로 살고 있기 때문에 실패와 좌절과 낙심과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는 것임.
주님이 함께 한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다면, 주님이 도와주신다면 당연히 100% 승리는 전제됨. = O.K? 그러므로 우리는 이 언약궤를 통해서, 나의 뜻과 생각에 훨씬 앞서서,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항상 삶 중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주인공들이 되야 함.